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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저자 | 김연덕 (지은이)
출판사 | 난다
출판일 | 2025. 10.01 판매가 | 15,000 원 | 할인가 13,500 원
ISBN | 9791194171935 페이지 | 260쪽
판형 | 120*185*15 무게 | 260

   


아오모리, 그 푸른 숲 이야기

아오모리로 떠난 건 순전히 사과 때문이었다.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현, 그리고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 아오모리에 대해 아는 건 그런 것밖에 없었다. 아오모리에 가서 많은 사과를, 사과 이미지들을, 그것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멍하고 귀여운 사람들을 보고 와야지 싶었다.

이미지. 아무리 생각해도 10월과 내가 별다른 연이 없었기 때문에, 흩어져 떨어지는 원고들을 묶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하나 필요했다. 내 상상력의 빈약함을 상쇄시켜줄 만한 또렷하면서도 평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손안에 들어와 내가 쓰다듬거나 포장하거나 여러 조각으로 잘라버릴 수도 있지만, 안쪽부터 구조를 살펴보면 나보다 큰 몸집과 시간이 들어차 있는 그런 이미지가. 그러자 곧 붉은 사과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책이 출간될 10월에 한창일 사과. 사과는 심장 같고 지구 같고 세계 같지만 거실에 함께 앉아 먹다보면 방금 먹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흔한 과일이다.

그렇게 간단한 생각으로 아오모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청송이나 예산, 문경 같은 다른 사과 산지들까지 돌아다녀볼 생각이었다. 이곳과 저곳의 사과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지, 사과를 홍보하는 방식이나 과수원들이 나뉘고 모인 모양에 대해, 사과와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큼 연결되어 있는지 비교해볼 생각이었다. 제각각의 얼굴과 마음으로 돌출된 도시들을 나만의 이미지로 함부로 묶으려 했던 것이다.

사과로 이곳을 전부 파악해보겠다는, 계획적이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아오모리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을 돌아다니며 나는 원고의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森. 아오모리를 한자로 쓰면 푸른 숲이라는 뜻이다. 아오모리 공항에 착륙하기 전 십 분간 비행기 창문을 가득 메운 빼곡한 숲이 보였다. 험준한 산세 사이사이 옛날 사람들처럼 서 있던 북쪽 나무들. 나는 몸의 방향을 창문 쪽으로 더 틀어 가도가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숲을 내다봤다.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조용한지 시끄러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다 감각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광경이었고, 색에서 여러 이야기와 여러 감정들이 느껴졌다. 들어본 적 없는 그 이야기들이, 나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무들이 표현하고 있는 감정들이 빠르게 내 몸을 치고 지나갔다. 사과 한 알로 그곳을 점령해보겠노라고 애쓰던 내가 시작부터 다른 색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기쁘고 당황스러웠던 순간들은 여행중에도 계속되었다. 흰색처럼 나른한 태도의 노인들, 삼림박물관의 창백한 빛과 츠츠미가와 료쿠치 항구 공원에서 바라보았던 끝없는 수평선, 모든 가게마다 붙어 있던 네부타 축제 포스터와 그 안에 담겨 있던 축제의 외롭고 화려한 불빛……

사과 이야기를 할 필요도 다른 사과 산지들을 돌아다녀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로지 사과 때문에 아오모리로 떠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묶을 수 없었고 결코 묶이지도 않던 아오모리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해보고 싶다. 온통 붉은 잎과 붉은 나무들로 가득한 요즘, 푸른 숲?森 이야기를 이어가보고 싶다. 복잡한 생물의 뼈처럼 오래된 사랑과 오래된 이야기가 많은 도시는 나를 항상 겸손하게 만든다.

P.S. 5월부터 8월까지 이 책을 썼고, 책을 완성하기 직전 나는 아오모리에 다시 가게 되었다. 첫 방문 후 두 달 반 만인 2025년 8월 9일, 아오모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는 책의 몸체가, 책의 감정과 정신이, 그리고 책 자신이 더듬어가며 여전히 궁금해할 아오모리의 어둡고 밝은 부분들이 조금 바뀌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오모리에 다시 도착하기 전, 상공에서부터 말이다. 난기류 속에서 어지러워하면서, 미세하게 달라져가던 책의 낱장들을, 그래서 앞부분과 약간은 헐겁게 연결될 수도 있을 책의 피곤한 얼굴을 여기 그대로 남겨둔다.

언젠가 이 책과 함께 세번째, 네번째 방문하게 될 아오모리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낡아가거나 새로워질지 기대하면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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