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Home    |    신간도서    |    분야별베스트    |    국내도서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문어는 심장이 세 개
저자 | 강지혜 (지은이)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일 | 2025. 12.16 판매가 | 12,000 원 | 할인가 10,800 원
ISBN | 9791141602697 페이지 | 152쪽
판형 | 130*224*8 무게 | 198

   


문학동네시인선 246번째 시집으로 강지혜 시인의 『문어는 심장이 세 개』를 펴낸다. 숨길 수 없는 통증을 빛나는 감각으로 표현하며 서로를 껴안는 일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내가 훔친 기적』(민음사, 2017), 시인이 생면부지의 섬 제주로 이주하여 가족과 생업,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민음사, 2022)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2025년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I know you take your child now」 「야적장」 「필요와 사랑의 탄생」 등을 포함해 그간 치열하고도 부지런히 작품활동을 해온 시인의 신작 시 총 49편이 4부에 걸쳐 수록되었다.
『문어는 심장이 세 개』는 “그거 알아?/ 이거 안 떼어지는 스티커야”라는 인상적인 질답으로 이루어진 ‘시인의 말’로 문을 연다. 천진난만한 듯 허를 찌르는 그 목소리는, 시인이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육아를 하며 받곤 하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질문을 시에 녹인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처럼 아이의 시점, 혹은 삶과 자연에 대한 순수 어린 경이로부터 시작되는 강지혜 시의 특징은 표제시 「문어는 심장이 세 개」에서 전면화되어 드러난다.

엄마, 그거 알아?
문어는 심장이 세 개래

불길한 벨소리가 울린다
아슬아슬하게 조율된 악기의 현처럼
심장은 벼려진다

문어는 심장이 세 개고
나는 심장이 한 개인데
감당할 수 없는 혈류가
모여서 심방과 심실의 규칙이 엉망인데

비정형 흐름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무서운
어둠 속 무수한 발처럼
정수리를 쿵쿵쿵쿵
밟아댄다

(…)

나는 왜 심장이 하나야
두 개 더 있다면 두렵지 않을까
나약하고
물컹이는
발들 사이로

슬픔은 무엇의 재능일까

아내는 매일 슬퍼,

매일 슬픈 자를 보는 사람의 심장은 몇 개일까

남편의 아이스박스에는 문어가 여섯 마리
가장 작은 문어는 놓아주자
이건 먹으면 죄받아

질겅질겅 잘도 씹으면서
죄와 벌을 논하면서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위악
떼어내려면 살점이 떨어져나가야 해
상처는 붉고
혈관은 검고
바다는 푸르고

문어의 심장은 세 개고

모두에겐 심장이 하나 이상 있다는데

어디를 무엇을 먹고 있는 걸까
_「문어는 심장이 세 개」에서

아이가 “엄마, 그거 알아?”라는 질문을 한 뒤 알려준 “문어는 심장이 세 개”라는 의외의 사실은 화자로 하여금 불현듯 심장 속 혈류의 “비정형 흐름”처럼 “아슬아슬”하고 “불길”한 심상에 젖게 한다. 화자는 문어처럼 인간도 심장을 두 개 더 가지고 있다면 생의 공포와 불안을 덜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자는 느닷없이 덮쳐온 삶의 유한성에 대한 무력한 슬픔을 의식하면서도 식용할 수밖에 없는 “아이스박스” 속 문어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개중에 “가장 작은 문어는 놓아주자”고, “이건 먹으면 죄받”는다고 말한다. “엄마, 그거 알아?”라는 아이의 심상한 질문에서 비롯된 시는 생명을 대하는 최소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나영은 “엄마, 그거 알아?/ 문어는 심장이 세 개래”라는 시 속 아이의 말과 그 말의 청자인 엄마 사이에 흐르는 긴장된 침묵에 주목한다. 아이와 엄마, 화자와 청자, 이편과 저편을 잇는 대상 “그거”란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아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빈 괄호”처럼 독자를 “무한히 열린 만남의 장소”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그거 알아?”라는 의문문은 시 속에서 불현듯 엄마가 느낀 생의 공포와 불안처럼 청자를 낯선 타자적 세계에 위치시키고, 그럼으로써 그간에는 하지 않았을 새로운 질문과 윤리를 발견하게 한다. 바로 이 시적 도약이 강지혜 시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와 같은 시적 도약은 이번 시집의 서시인 「초식동물」에서도 살필 수 있다.

나의 파잔은 언제 어디서부터인가

초식동물로 자라났다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나는 유일한데
자의식과 꿈만이 다리를 만진다

셀피를 찍는 어린 코끼리

뒤에서 다가오는 맹수의 이빨을
평생 감각하면서

부드러운 귀와
아직 덜 자란 상아를
두들겨 패는 몽둥이
덜덜 떨며 기다리면서
기다리다 날아오는 매를
정인(情人)처럼 반기면서
매질이 멈춘 순간을
되찾은 엄마 코끼리인 양
울부짖으며 반기면서
어느새 나는 커다란

위에 서 있었다
_「초식동물」에서

「초식동물」 또한 “나의 파잔은 언제 어디서부터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파잔’이란 어린 코끼리를 학대해서 야생성을 말살시키는 의식을 뜻한다. 어린 코끼리는 채찍질과 같은 폭력적인 조련을 받으며 성장한다. 「초식동물」은 누구나 지니고 태어난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규칙과 규격에 맞춰 자라야 하는 인간세의 슬픈 우화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리다 날아오는 매를/ 정인(情人)처럼 반기면서/ 매질이 멈춘 순간을/ 되찾은 엄마 코끼리인 양/ 울부짖으며 반기면서”라는 대목에 주목해보면, 어린 코끼리는 성장에 수반되는 폭력을 다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린 코끼리는 “다가오는 맹수의 이빨을/ 평생 감각하면서” 자기 본연의 모습에서 스스로 의식적으로 멀어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잊어야 한다// 나의/ 이름”). 김나영은 해설에서 이를 “세계로부터 타격받음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충격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강지혜 시 화자 특유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그로 볼 때 어린 코끼리는 성장의 어둠을 딛고, 고통을 더욱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도약하려 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이러한 성장의 모습을 그린 「초식동물」과 더불어 출산과 육아의 상황을 인상적으로 펼친 시들 또한 실려 있다.

안녕하세요 내가 그 야적장을 낳은 여자예요 야적장은 잘 있나요 벽돌과 모래와 덤프트럭과 철근과 전선 드럼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과 뼈와 기쁨이 아직 잘 살아 있나요
_「I know you take your child now」에서

나는 이 여자를 알고 있다
몇 년 전 만삭의 배로 내 위에 넘어진 적이 있다
그날 여자는 태아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모두 내 탓인데
과연 아이를 잃고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 짊어질 수 있을까
밤새워 울었다
(…)
여자는 상상했던 것보다 멀쩡했다 간단한 타박상과 늑골 주위의 염좌뿐이었다
첫 아픔의 순간 여자가 자신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까지 갔다 왔듯이
나 역시 언제나 고통을 꿈꾸고 있다
_「접촉」에서

강지혜의 시에서 출산과 육아의 이미지는 세간에 묘사되곤 하는 신성하거나 숭고한 것이라기보다는 “벽돌과 모래와 덤프트럭과 철근과 전선 드럼”처럼 다분히 물질적이며 “괴로움과 고통”을 수반하고, 상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첫새벽, 악을 지르며 내 침대로 찾아드는 아이에게/ 쉬이- 쉬/ 나는 항상 여기 있어/ 말했지만” 실은 이 세계란 매 순간이 역행할 수 없는 “시간”이 무정하게 흐르고 “질병”이 “도사”(「야적장」)리는 곳이다. 생의 시작점인 출산과 육아, 그리고 성장은 안온한 평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같은 시)처럼 치러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지혜의 시 속 화자는 “눈을 감고 간절히 기원한다”. “평안을 주세요……”(같은 시)라고.
한편, 시인이 연고 없는 섬 제주도로 떠나 생활하며 쓴 산문집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민음사, 2021)를 펴내기도 한 이력답게 이번 시집에도 섬 생활을 연상시키는 시편들이 눈에 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야생 꿩이 많아. 얼마 전에 운전하고 가다가 그를 차로 치었어. 그가 빠르게 달리고 있는 내 차로 뛰어들었어.
_「안부」에서

방금 지나친 무덤에는
등갈퀴나물이 얽혀 있고
저 앞의 무덤에서는 노루가
풀을 뜯는다
무덤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 길
여기서 끝나버린 생을 몇 알고 있다

(…)

거대한 송전탑들
그 사이를 잇는 고압전선이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시간보다 더 깊은 날개를 가진
까마귀들
까마귀는 인간의 삶을 모으지 않는다
그것은 빛나지 않으니까
_「산록도로」에서

돌고래와 가까운 곳에 살고부터
자주
돌고래 꿈을 꾼다

(…)

언제나 용기 쪽에 서 있는 고래들
_「멀리 던지기-신도리에서」에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자연이 오롯이 보존된 섬에서 「안부」의 “꿩”, 「산록도로」의 “노루”, 「멀리 던지기-신도리에서」의 “돌고래”와 같은 야생동물을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유구한 자연을 통해 인간의 평범하고 협소한 생활 속에서도 주위 환경과 시공간을 남다르게 감각할 수 있다는 뜻일 터이다. 세로로 쓰인 이채로운 시 「자왈」은 그런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자왈’이란 제주도 방언으로 ‘덤불’을 뜻한다. ‘덤불’의 모습을 차용한 세로 시 「자왈」은 할머니,?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대(代)를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어머니에게서 내게로/ 내려온 피 내가 딸에게 준 피 내 딸이 다시 내게 준 초록 내가 내 어머니에게/ 준 초록 어머니가 세상에서 뽑혀나간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준 초록
_「자왈」에서

과거와 현재가 순환하고, 그럼으로써 생명이 이어진다는 것을 포착한 시인의 시간 감각은 또다른 시 「비선형적 시간의 순간 너머」에서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신자, 발을 감싸는 뜨거운 체온,
내가 갈 방향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두려움과 흥분,
여기서는 넘어져도 괜찮다고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내리막길을 질주했던 열세 살의 내가 상급자 트랙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든다

지금의 나는 롤러스케이트 위에서 위태롭게
또한 신선하게 휘청이고

바퀴는 직선으로 굴리는 게 아니라
한 발 한 발 바닥을 지치며 나아가는 거야

어떤 흐름에 기어이 흔적을 내며 달려가는 일
심장의 박동을 숭배하는 일

저기 스케이트를 탄 네가 온다

나에게 와서
쓰러진다

열세 살의 나와 일곱 살의 너의
달뜬 얼굴로
_「비선형적 시간의 순간 너머」에서

시 속에서 아이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화자는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진, 서로 멀리 떨어진 시간을 동시에 경험한다. 화자는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신자” 과거의 감각들이 육박해오며 “내리막길”을 질주했던 “열세 살의 나”로 돌아간다. 김나영은 해설에서 강지혜의 시가 “자신이 아이였을 때를 현재의 아이의 모습에서 겹쳐보는 일”, 그러한 세계의 중첩을 통해 사랑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든다고 해석한다. “어떤 흐름에 기어이 흔적을 내며 달려가는 일/ 심장의 박동을 숭배하는 일”은 타자성에 내맡겨진 채 자기를 발견하는 일, 아이를 받아 안으며 어린 자신의 “달뜬 얼굴”을 마주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강지혜의 시는 아이였던 나의 시간이 담긴 ‘과거’와 현재의 아이가 자라날 ‘미래’의 시간을 잇대어놓으며,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 삶을 보편의 역사로 확장시킨다. 우리 안에 움츠리고 있던 사랑의 생명력, 한 시절 어린이의 아픈 배를 문질러주었던 양육자의 체온 어린 손길이 담긴 『문어는 심장이 세 개』는 한 해의 끝,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게 하는 이 계절에 따뜻한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내 심장은 너보다 조금 더 먼저 뛰고
깊고 먼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꼭 감는 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너

기꺼이 너의 배가 되어
네 바다를 항해하리라
_「배와 배」에서


 

고객센터(도서발송처) : 02-835-6872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0 메트로타워 16층 홈앤서비스 대표이사 최봉길
COPYRIGHT ⓒ HOME&SERVICE CO., LT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