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Home    |    신간도서    |    분야별베스트    |    국내도서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12호 : 인류세 이야기
저자 |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은이)
출판사 | 여해와함께(잡지)
출판일 | 2024. 08.31 판매가 | 17,000 원 | 할인가 15,300 원
ISBN | 9788985155779 페이지 | 240쪽
판형 | 162*234*20mm 무게 | 456

   


인간은 ‘이야기를 짓는 동물storytelling animal’이다. 자신이 속한 시간과 장소에 맞는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지식을 축적하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다. 이는 생명의 유구한 진화 과정에서 ‘감각sense’과 ‘정신mind’을 넘어 비로소 ‘의식consciousness’의 단계에 도달한 인간만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종에 이르러 시간이 탄생하고 문화가 형성되며 역사가 기록된다. 단편적인 경험을 뚜렷한 구조로 완성해주는 이야기는 모든 지식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문학만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도, 과학도 이야기이며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전체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금 문명이 붕괴의 위험에 놓였다는 건 그 문명을 떠받쳐온 이야기의 시효가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매력적이고 진리였던 이야기가 지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됐다. 인간은 종교, 전통, 관습, 문화, 이데올로기, 교육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이야기를 바꾸는 것, 즉 서사의 전환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지질 시대를 가리키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는 대기와 바다, 지층이 인류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서 급변했다는 이야기이며 그런 사실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통탄했던 이야기, 인간의 힘이 모든 생명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강력해졌으니 이제 성찰과 절제가 절실하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인구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세기 후반 ‘대가속’의 이야기,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의미를 돌아보는 이야기, 5000년 전 시작된 인류 문명이 각 지역의 풍토에 맞는 토착 문명을 넘어 식민지 개척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글로벌 문명으로 통합되는 이야기이다.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더는 지구의 역사와 구분해서 보기 어려워졌고, 미래의 역사는 계급과 국가를 넘어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기도 하다.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망라하는 인류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큰 이야기다.

그래서 인류세는 다시 작은 이야기들로 쪼개진다. 동질적인 종으로 취급되는 인류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대기업, 부유한 국가와 계급의 책임을 묻는 의미에서 자본세Capitalocene(제이슨 무어)라 불리기도 하고, 그 기원을 탄소 집약적 공장 시스템의 원형으로서 자본주의 이전 노예노동에 기반한 대농장에 주목해 대농장세Plantationocene(도나 해러웨이)로 명명하기도 한다.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낸 문제를 다시 인간중심으로 바라보고 풀어나가려는 경향에 대한 반발로서 페미니즘 과학기술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제안한 툴루세Chthulucene는 인간을 포함한 무수한 생명체들이 공생하며 분해와 재생산을 반복하는 장소로서 땅(그리스어로 툴루chthulu)이 가진 역량에 주목하여 지금 시대를 모두 퇴비로 돌아가 촉수를 뻗어 다양한 종들과 친족으로 연결되는 잠재적 시기로 규정함으로써 다소간의 희망을 찾아낸다.

이처럼 다양한 인류세 이야기는 지금의 잘못되어가는 세계를 비추고 판정하는 거울이자 저울인 동시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헤쳐가기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더워지는 기후와 산성화되는 바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생태계는 자연현상이 아니다. 거기에서 인간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읽어내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낸 세계관과 가치관의 오류가 드러난 다음에야 문제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다. 숫자와 전문용어, 정책의 언어가 지배하던 기후생태 위기를 자본주의와 불평등, 구조와 권력의 문제이자 문화와 문명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 인류세라는 서사의 힘이다. 이제 인류세는 지질학과 역사학과 정치학을 가로질러 인류세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철학과 윤리의 문제까지 내려왔다. 인류세의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거대한 도전 앞에서 한 발짝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을 펼치기 위해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이번 호의 필자들은 인류세라는 거대한 주제를 받아들고 고심을 거듭했다. 어떤 이야기도 인류세를 손에 잡히게 보여줄 수 없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인류세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변죽만 울리는 어려움이야말로 인류세를 다시 설명하려는 용어들이 계속 생겨나는 이유이며, 반대로 말하면 인류세라는 상황이 기존 언어와 사고의 전제와 관습에 계속 도전하도록 만든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모두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각자가 자기 관점에서 펼쳐놓는 이야기들은 그 소재와 차원이 너무 다양하기에 조화롭고 세련된 플롯으로 완성되는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굽이굽이 이어지는 서사시가 될 것이다.

인류세 이야기는 지난 3년간 12호에 걸쳐 이어온 《바람과 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형태도 색도 소리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담아내는 바람과 물처럼, 서로 다른 목소리와 입장을 수용하는 열린 공간으로 존재하며 전환의 시대를 그려본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기후위기와 비인간 존재에 마음 쓰는 이들과 함께 쉽게 규정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서사의 전환’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인류세 이야기와 닮았다. 그것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자 위험에 처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전환의 이야기였다. 2030년, 2050년, 2100년…, 우리는 어떤 마음과 실천으로 살아갈 것인가? 문명 전환기에 가장 필요한 가치는 겸손한 마음과 절제된 삶,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하고 열린 자세일 것이다. 인류세를 함께 건너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우정을 보낸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언어로 바람과 물을 이야기할 때다.


 

고객센터(도서발송처) : 02-835-6872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0 메트로타워 16층 홈앤서비스 대표이사 최봉길
COPYRIGHT ⓒ HOME&SERVICE CO., LT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