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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저자 | 송승환 (지은이)
출판사 | 문학실험실
출판일 | 2026. 03.22 판매가 | 12,000 원 | 할인가 10,800 원
ISBN | 9791198481764 페이지 | 128쪽
판형 | 121*194*12 무게 | 179

   


사태의 재현과 증언의 불가능성 속에 도래하는 “백지의 언어”
자명한 언어와 사물의 의미에 균열 내며, 독특하고 깊이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해온 송승환 시인의 7년 만의 신작 시집 『파』가 출간되었다. 송승환의 이번 시집이 나아가는 지점은, “글자의 견고한 형태를 으스러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글자 체계가 공유하는 기본 원칙까지도 부수어 글자가 적힌 지면을 위아래로 뒤집어버리는 것”(홍성희)이다. 송승환의 시는 ‘눈 결정’이 아니라 ‘눈송이’로부터, 이미 견고히 덩어리로 인식되는 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파(破)’하는 과정을 역추적하면서, 가림과 침묵을 강요당한 진정한 의미의 시어를 복원해낸다.
송승환의 시가 주어를, 서술어를, 의미를, 한자(漢字)를, 모음을, 직유법을, 지시 대상을, 글자의 덩어리를 으스러뜨리고 백지의 언어를 기다리는 이유는 사태의 재현과 증언의 불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기원한다. 시는, 사태의 자리에 부재하다. 시는, 사태 이후에 온다. 시는, 사태 이후에 오기 때문에 사태, 그 자체의 끔찍함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고 경악스러운 고통을 즉각적으로 말할 수 없다. 사태의 현장에 부재했다는 부채감과 무력감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그러나 말을 해야만 하는 시인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의 언어는, 그리하여 매번 다시, 고쳐서 말해야만 하는 언어는, 사태를 기억하기 위해 상상하는 언어는, 언제나 나중에 도래한다. 상상을 통해, 시인의 육성이 아니라 사태의 어둠 속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름 없는 어떤 목소리로, 사태의 어둠 속 하나의 파편에서 비롯된 상상력으로, 온전히 고통스럽게 사태를 살아낸, 시인의 온몸을 빌어서 돌연, 도래하기 때문이다.

공백으로부터 생겨나는 소리, 고독한 이가 말하는 “투명한 빙하의 언어”
송승환의 시는 “의미와 의미 전체는 우리들과 우리의 글 안에 즉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도래해야 할 미래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 “우리가 의미를 캐물을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생성으로서 그리고 질문의 미래로서만 포착한다는 사실을 긍정”(모리스 블랑쇼)한다. 즉각적인 언어와 그 의미를 모두 지우면서 백지 위에 도래하는 언어를 기다린다. “공백으로부터 생겨나는 소리, 고독한 이가 말하는 비언어, 언어가 그것에 응답하고 언어가 그 속에서 태어나는 비언어”(조르조 아감벤)를 투명한 빙하의 언어로 송승환의 시는 구현한다.
송승환의 시는 ‘지금-여기’의 의미를 항상 재구축하는 언어의 형식을 통해 ‘지금-여기’를 초과하는 낯선 현존, ‘너’를, ‘지금-여기’에 출현시킨다. 이질적인 언어의 형식과 상상력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거나 감춰져있던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시는 고통의 경험에서 흘러넘치는 낯선 언어의 경이(驚異)를 받아 적는 어떤 목소리이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세계의 출현을 ‘지금-여기’ 타자로서의 내가 재현 불가능한 언어로 기입하는 것이다.

비를 피할 지붕도 우산도 없는 세계에서 다시 쓰이는 시(詩)의 언어
송승환 시집은 ‘검은 글자’의 목소리까지도 들리게 만들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자를 적거나 지울 수 있는 지면의 조건 위에서, 전적으로 문자를 통해, 문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환과 전복은 유비적이고 추상적인 층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수사적 상상력이 가지는 힘은, 듣고 보는 일이란 가청권과 가시권을 ‘벗어난’ 대상이 아니라 어쩌면 이미 항상 들리고 또 보이고 있는 존재들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무지(無知) 혹은 무감(無感)의 ‘없음[無]’을 더 이상 알리바이로 사용할 수 없는 세계에서, 비를 피할 지붕도 우산도 없는 세계에서 글자는 다시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그것을 되묻는 방식으로 송승환의 시는 재차 시작된다. 제단을 돌보는 자의 고독을 견디면서, 들리는 이들의 외로움을 마주하면서.
_홍성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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