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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컵의 휴식
저자 | 이수명 (지은이)
출판사 | 난다
출판일 | 2025. 09.18 판매가 | 18,000 원 | 할인가 16,200 원
ISBN | 9791194171867 페이지 | 268쪽
판형 | 457g 무게 | 131*196*20mm

   


이수명 시인의 날짜 없는 일기 세번째 권 『흰 컵의 휴식』을 출판사 난다에서 펴낸다. 『내가 없는 쓰기』 『정적과 소음』에 이어지는 이번 책은 시인 이수명이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동안 쓴 일기로 2~3일에 한 번씩 쓴 짧은 메모이자 자생적 생기를 띤 계절 일기이다. 사물과 상황의 사생을 위주로 구도나 배치 없이, 신경써서 구성하지 않는 편안함에 기대어 있는 이 조각들은 방향 없이 이어지며 그날의 기분에 따라 태도에 따라 말의 색과 톤, 높이와 위치, 명암도 다 다르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시인은 말한다. 글을 쓰는 1년 동안 불충분하게나마 다른 사람이었을지 모른다고. 날짜 없는 일기의 세번째 권을 묶으며 이수명 시인은 짧은 날것의 언어 호흡이 글쓰기 한쪽에 어느덧 자리를 잡게 된 느낌을 받는다. 이 일기는 일종의 사생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나 마주치는 장면을 특별한 압력을 빌리지 않고 사생하듯 스케치해보려는 시도였다. 보는 자가 있기에 있는 것이 그대로 그려지기는 쉽지 않아 사생 지향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러한 방식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사생이 가능하게 된다. 입구와 출구가 딱히 필요 없는 글. 어쩌면 시인은 일기니까, 시처럼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잠깐씩 또다른 시를 흉내 내는 건 아닐까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다시 빠져나오는 반복. 그 어디로 들어가기보다 사생성에 힘입어 나오려는 쪽으로 움직인 글들. 시인은 낯선 어조를 찾는다. 아직 닿아보지 못한 어조, 더 낮고 흔들리는. 다시 내려서는, 다시 밝아오는, 분리된 어조. 불쑥 나타나는 어조를(18쪽). 시는 사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묘사할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정확한 것이다. 정확해야 신비롭다(35쪽). 시인은 아무래도 1월의 일기를 쓸 때의 내가 아니다. 그 어느 날의 내가 아니다. 아침의 단호하던 내가 아니며, 방금 전에 거리를 쏘다니던 사람이 아니다. 이상하고 명랑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150쪽). 어느 메타포에도 휘감기지 않는 단일한 흰색의 컵, 어떤 숨겨진 패턴이나 층위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컵을 들어올리려는 손가락들이 컵의 표면에 이지러져 비쳐도 컵의 휴식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흰 컵의 휴식, 엔트로피로부터의 휴식, 지상에 처한, 지상을 입고 있는 존재의 지상으로부터의 휴식.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82쪽).
납작해진 치약을 눌러 짠다. 아직은 더 납작해질 수 있다(15쪽). 시인은 추운 날씨 버스 정류장 아무도 앉지 않은 벤치 아래에서 바싹 마른 갈색의 낙엽을 발견한다. 잎자루도 있고 잎맥이 남아 있는. 눈과 추위에 쓸려가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고 가장 늦게까지 남은 선과 무늬를(16쪽). 강추위에 모든 게 숨죽인 거리, 지속되는 한파에 물은 흐름을 멈추고 두껍게 얼어 있다. 아주 가벼운, 물위에 떠 있는 지푸라기도 꼼짝없이 얼음 속에 박혀 그와 하나가 되어 있다. 얼어붙은 죽음으로 실재하는 지푸라기. 얼음을 깨뜨리지 않는 한 이것에 이를 수 없다. 이 죽음을 시로 이동시킬 수 있을까. 시가 얼음을 녹여, 죽음에서 지푸라기를 꺼낼 수 있을까(30쪽). 책상 위에 투명 플라스틱 물병이 두 개 놓여 있다. 생각 없이 번갈아 마셔서 두 병 다 비슷하게 약간만 남아 있다. 물의 양에 상응하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언어의 옆길에 있는 물을 마신다. 언어가 알지 못하는 물을 마신다. 꾸밀 수 없는 물을 시인은 그냥 바라본다(64~65쪽). 시인은 가벼운 남방을 걸치고 외출했다가 다가오는 햇빛을 본다. 인도 옆 땅에서 올라온 아주 작은 키의 흰 풀꽃들을 감싸고 있는 빛을. 꽃잎들은 작고 흩어져 있어서 마치 부서져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부서진 풀꽃들이 지천으로 빛을 나르고 있었다. 누구도 받아들지 못하는 빛을(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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