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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어딘가 닮아 있는 것들
저자 | 고우리 (지은이)
출판사 | 상상인
출판일 | 2025. 12.15 판매가 | 12,000 원 | 할인가 10,800 원
ISBN | 9791174900357 페이지 | 126쪽
판형 | 128*205*6 무게 | 164

   


고우리의 시집 『어딘가 닮아 있는 것들』은 거창한 선언 대신, 생활 현장에서 찾아낸 사유로부터 출발한다. 이 시집의 화자는 늘 “지금 여기”의 사물과 장면을 붙잡는다. 곰팡이 핀 슬리퍼, 김치냉장고 안쪽의 반쪽짜리 김치, 국화가 피기도 전에 모여든 벌들, 고속도로 이정표의 두 글자, 집 안을 밝히는 드라세나 마지나타의 잎 그리고 묘역 위의 구름 등 그의 시는 이 소소한 것들을 단순한 묘사로 끝내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의 구조와 사유의 흔적을 끌어올린다.
이 시집의 첫 작품 「도미노」가 보여주는 것은 파괴와 완성의 애매한 경계다. “세워야 완성인가 무너져야 완성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철학적 수수께끼가 아니라, 삶이 매번 무너짐과 재정렬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하는 태도다. 시집 곳곳에서 ‘무너짐’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다시 서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터널을 지나며」의 숨 막히는 순간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공포는 지나가고, 화자는 “나는 계속해서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낙관의 구호가 아니라, 공포가 우리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냉정한 확인이다.
고우리 시인의 이 시집을 한마디로 말하면 ‘괜찮은 사람, 괜찮은 세상 만들기 위한 시 쓰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대체로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함께 맞는 비」에서 묘역의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연을 끌어당기는 장치가 된다. 같은 비가 내리는데도 “여기가 묘역이라는 이유만으로/비와 구름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는 문장은 장소가 감정을 바꾸는 방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 장면 한가운데서 “내 손을 꽉 잡는 당신”이 있는 것, 그래서 “우산이 없어도 괜찮다”로 끝나는 것은 상실과 불안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이 현실적인 힘이 된다는 증언이다. 「너에게」 또한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과장된 태도를 거부한 뒤, “이 모든 일이 결국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방식은, 위로의 윤리를 지키려는 태도다. 과잉 공감이나 과잉 약속 대신, “한동안만 아프자”고 함께 견디는 인내의 시간을 제안한다. 「꽃무늬 삼총사」에서 꽃무늬 바지와 지팡이는 단순한 귀여움의 소재가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몸이 세상 위를 이동하는 방식이다. “한 세기 가깝게 피어난 꽃들의 이동”을 지켜보는 화자의 시선은 연민을 과시하지 않고, 존중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디 오래오래 피어 계시길”이라고 말하며 모든 생명을 응원한다.
한편, 이 시집은 달콤한 자기계발의 문법을 경계한다. 「진짜 용서는 가짜」는 포용의 언어가 얼마나 쉽게 자기기만이 되는지 말해준다. “그들이 너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혼자서 용서한 것이 진정한 용서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화자는 “내가 뭐라고,”로 결론을 내린다. 이 짧은 문장은 겸손이 아니라, 도덕적 우월감의 해체다. 「스코폴라민」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지우는 욕망의 위험을 “고통을 잊는 것이 고통”이라는 역설로 붙잡는다. 삶을 ‘기분 좋게’ 흐리게 만드는 것과, 삶을 살아내는 것의 차이를 시적 화자는 분명히 인식한다. 그래서 이 시집의 ‘괜찮음’은 대충 넘어가는 둔감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직시한 뒤에야 겨우 가능한 사유의 단단함이다.
마지막 작품인 「흐려지는 것들에 인사하며」는 이 시집의 미학을 정리한다. 선명해지려는 노력 끝에 도달한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눈을 부릅뜰수록/어지럽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화자는 따뜻한 손바닥으로 눈을 덮고, 흐려짐을 적으로 삼지 않는다. 선명함을 강요하는 시대에, 흐려짐과 공존하는 방식은 곧 삶을 지속하는 방식이 된다. 『어딘가 닮아 있는 것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는 늘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 또 흐려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하지만 작고 구체적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과장된 위로 대신 가능한 말을 건네는 것, 쓰레기와 추억의 경계에서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 그런 태도들이 결국 ‘괜찮은 사람’과 ‘괜찮은 세상’을 조금씩 만든다. 이 시집은 그 “조금씩”의 힘을 믿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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