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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미결인간
저자 | 김성달 (지은이)
출판사 | 도화
출판일 | 2026. 03.23 판매가 | 15,000 원 | 할인가 13,500 원
ISBN | 9791124052075 페이지 | 276쪽
판형 | 135*195*14 무게 | 359

   


김성달 작가의 연작소설집으로 구치소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죄와 무죄의 경계에 선 미결수들의 삶과 내면을 밀도 있게 포착한 작품이다.
중편 1편과 단편 6편을 싣고 있는 이 연작소설은 단순한 범죄 서사를 넘어, 판결이 내려지기 전의 인간-미결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안과 고립, 그리고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구치소라는 공간은 단순한 수감의 장소가 아니라 각자의 사연과 기억, 후회와 희망이 뒤엉킨 정지된 시간의 무대로 그려진다. 작가는 그 안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죄를 부정하는 사람, 이미 스스로를 유죄로 확정해버린 사람,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무너져가는 사람 등 다층적인 군상을 사실적이면서도 소설적인 시선으로 묻는다. ‘미결수’란 선고를 받기 전 구치소 등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말하는데,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그러한 상황은 동일하지만 각자 겪어온 삶은 저마다의 구체성을 가지면서 인생의 파노라마를 만화경처럼 펼쳐내는 입체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김성달 작가가 엮어내고 있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는 항구적 미결상태인 우리의 삶을 은유하면서 다가오는데, 한결같이 영문 이니셜로 새겨져 있는 그들의 이름이 이러한 익명의 상황과 함께 인간이 결국 어디론가 갈 수 있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존재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실린 「미결인간 K」는 중편으로 이 연작소설의 대표 격이다. 작품의 주인공 K는 어느 추운 날 아침 구치소를 떠나 선고 공판장으로 향한다. 그는 그 과정에서 수 없는 감시카메라를 의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카메라는 법정에 나타나 자신을 감시할 ‘양아버지’의 시선을 부르는 예고편이었다. 감시와 처벌의 공간인 구치소는 인간 경험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작품 안에 형상화될 때에는 어떤 의식이나 지향의 정치적 등가물로 작동하기도 한다.
구치소 벽은 저마다 어둠을 단단하게 품고 있다. 그 안에서 언제나 그를 감시하던 원형의 새카만 눈알은 비록 그것이 감시카메라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로 하여금 한순간도 납빛 유령 같은 감시의 시선을 잊지 못하게끔 해준다. 소름 끼치도록 푸른 빛을 발산하는 그 존재를 쫓다가 주인공은 아주 짧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K는 1년 4개월 동안 구치소에 있으면서 기다리던 선고 날을 맞았는데, 이때 그는 미결수의 시간이 바로 ‘기다림의 시간’임을 생각한다. 그의 죄목은 양아버지가 세운 인애원에서 원생들을 불법 감시하고 감금하여 인권을 유린했다는 것이었다. 인애원은 교도관이었던 양아버지가 불명예 퇴진을 하고 나서 세운 위탁기관이었는데, 공학도인 K는 양아버지의 요구대로 원생 감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 그것이 사생활 침해와 인권 유린, 불법 기술 이전, 업무상 횡령 등으로 해석되면서 K는 구속되었다. 구속기간 동안 K는 “매 끼니마다 누군가의 그릇에 무 한 토막이라도 더 들어가면 불공평하다고 소동이 벌어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오는 물품이나 사식을 신청할 때 누군가 닭다리 훈제라도 주문하면 갑자기 그에게 과도한 선의가 집중되는 유치한 일이 흔하지만 사람 사는 게 그런가 싶었다. 따뜻한 물을 한 컵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눈을 부라리고, 잠잘 공간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하는 모습들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생존의 모습이었다. 평생 양아버지의 보호 아래 살아온 K가 살아보지 못한 인간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K는 어쩌면 ‘살아보지 못한 인간의 시간’을 느끼게 된 것이다. K는 어느 날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하면서 심경의 변화를 맞는데, 그것은 양아버지를 교도소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했던 탈옥수가 쓴 기록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책 속 탈옥수로 몸을 바꾸어 탈옥하는 꿈을 꾸었다. 나날이 느끼던 공포와 환멸은 이제 새로운 꿈으로 바뀌어 그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듯했는데, K는 결국 검찰의 구형 그대로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K는 탈옥을 위해 피 한 방울 흘리는 것과 구치소에 갇혀 생각이 하나씩 꺼져가는 것이 한 치 차이라는 점을 절감하면서 잠 속으로 빠져든다. “긴 하루였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그렇게 그가 정신적으로 한 뼘 깊어가는 성장 서사를 압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미결인간 N」의 60대 중반 화자는 한 달째 구치소에서 그릇을 닦고 있다. 차츰 구치소 생활에 적응해가던 그는 ‘묘선’이 보낸 편지를 거듭 읽으면서 반가움과 감동을 번갈아 느낀다. N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음이 멀어지던 중 조선족 여성 ‘묘선’을 만나 세상에서 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에서 이렇게 강력한 감정이 번개 만들어지듯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감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묘선과 인연을 이어오던 중 세금 추징과 아내의 병고가 겹치는 난경을 맞게 된다. 잘 알고 지내던 이가 이 틈을 타서 어이없는 고소를 하였고, 그는 재판에서 법정 구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N은 자신의 삶을 천천히 관조하기 시작하고, 그리움과 기억을 담은 묘선의 편지는 그에게 생의 경전처럼 ‘인생’을 가르쳐준다. “당신이 매일 찬물로 닦고 있다는 그릇을 생각합니다. 그 그릇은 내일이면 다시 밥과 반찬을 담아 나오겠지요. 이런 게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당신 손에서 깨끗하게 씻겨 다시 온갖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우리 인생에 감사하며 당신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그립습니다. 당신이. 많이.” 이는 구치소에서 살아가는 미결수가 한낱 자격 미달의 국외자들이 아니라 가장 진솔한 감동을 간직한 생의 주인공들임을 알게끔 해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미결인간 O」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 집을 나와 건설 현장에서 일도 하고 조직의 지시로 징역을 살기도 하는 간난신고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잡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다세대주택을 사들이는 등 안전장치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아내에게 외도 현장을 들켜 빈손으로 집을 나오게 된 그는 건설사 동업자에게 횡령으로 고소를 당하여 구치소에 왔다. 몇 년 만에 면회를 온 아내는 O에게 “당신은 가족을 몰라”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진다. 아내 가족에게 유난히 잘했고, 지금도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O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O는 그 짧은 면회 시간을 통해 “그동안 망각 속에 봉인하고 살아온 자신의 가족”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부정하고 떠나오고 별것 아닌 듯이 살아온 자신에게도 가족은 소중하게 남아 손안에서 “허연 반죽 덩어리 같은 유기물”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손바닥에 잡히며 부풀어 오르는 가족 형상으로 바뀌는 것을 자각하며 “누가 왔소?”라고 묻는 K에게 ‘가족’이라고 선뜻 대답한다.
「미결인간 S」는 유머러스한 상황과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S는 곧 보석으로 나갈 거라며 감방 식구들로부터 회장님 예우를 받고 있는데 그러한 그의 장담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연인즉, 부동산개발사업을 하던 그가 그동안 몇 번 감방에 왔지만 그때마다 쌍둥이 형이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감무소식이다. S는 자신의 보석은 무산되고 다른 사람들은 줄줄이 보석으로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자 공황에 빠진다. 쌍둥이 형이 면회를 왔기에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지만 끝내 보석은 이루어지지 않고, S는 마치 돈키호테처럼 출입문을 스스로 들이받으면서 부상을 입고 실려 나간다. 작품을 시종 관통하던 웃음의 미학은 결국 존재의 비극성을 돋을새김하는 역설의 장치로 기능한다.
「미결인간 U」는 U의 생을 관통하는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일차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구치소 방장이 요청으로 U의 지난날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그가 겪어온 소년교도소와 구치소 생활들로 엮여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상경해 절도를 하게 된 그는 그때부터 경찰서 유치장으로부터 구치소나 소년교도소의 생을 살게 된다. 소년교도소 출소 후 공장에 취직하여 생활할 때는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하였고, 이어 경찰서, 구치소, 교도소로 옮겨지는 생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도 그를 따라다닌 고통은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인권이나 존엄성 같은 추상적 어휘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고통이 그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출소 후 이를 악물고 산 U는 4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스로 공장을 차리고 내실 있는 경영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굶주림의 세월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조를 만든 직원들에게 월급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 다시 구치소에 들어왔다. 그렇게 U는 평생 ‘배고픔’이라는 경험적 구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사가 합의를 종용하지만 U는 억울한 감정에 구속영장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타협할 줄 모른다. 그러면서 구치소에서 감당한 배고픔의 굴레에서 자신이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닥의 체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섞이면서 세상을 여러 겹으로 살펴보게끔 해주는 소설이다.
「미결인간 Y」의 주인공은 그에게 가혹한 아버지와 언제나 그의 편이었던 어머니. 자기중심적이고 출세 지향의 큰형, 군대에 갔다가 사고로 죽은 작은형을 가족으로 두었다. 작은형의 죽음 이후 약혼자마저 사고로 죽으면서 Y는 깊은 우울증에 빠진다. 그때부터 그는 ‘자서전’을 써도 좋을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후 사업도 해보고 직장도 거쳤으나 번번이 실패하다가 아파트를 팔아 채무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절대 아파트를 팔아서는 안 되고 잠시만 교도소에 갔다 오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아버지와 큰형의 협박과 설득으로 감방에 들어간다. 실형을 살고 나왔지만 아파트는 이미 큰형이 자신의 선거 출마를 위해 처분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에게 남긴 돈도 사기로 날리고 만다. 우연히 만나 결혼한 아내와도 헤어지고, 배도 타보고 고향에서 뒤늦은 취직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이렇게 구치소에 들어와 이제는 바깥으로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뒤늦은 눈물의 깨달음 속에서 Y는 가족이 마음 한구석에 어렴풋이 떠오르다가 지워지는 순간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어져갈 “한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로 갈 용기”를 갈망하면서 머리를 높이 쳐들고 걸어간다. Y는 보호관찰자임에도 다시 감방으로 돌아와야 했던 긴 하루를 통해 얻은 삶의 가혹함과 그로 인한 자유로운 넉넉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비록 삶으로서는 ‘미결’이지만 어떤 깨달음의 깊이에서는 ‘기결’의 차원을 얻는 역설을 작가는 둔중하게 던지고 있다. 이래저래 ‘가족’의 의미를 또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미결인간 P」의 주인공은 사업 실패로 회사가 부도나 검거되어 구치소에 있다가 집행유예 판결로 출소한다. 출소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결수’라는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구치소에 있을 때 아내가 보낸 편지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겠다는 말과 함께 “당신은 이제 혼자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그에게서 마지막 남은 삶의 동인까지도 빼앗아갔다. P는 어머니가 기초수급을 받기 위해 그가 구치소에서 나온 것을 비밀로 하자고 하거나, 치과에 들렀을 때 혹시나 싶어 어머니가 자신을 조카라고 부를 때 깊은 쓸쓸함을 느낀다. 어느 날 아내가 일산으로 심부름을 부탁하자 P는 예전에 그곳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떠올린다. 결혼 직후 행복했던 시간과 실패와 도주의 시절이 모두 떠올랐다. 어머니 집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P는 어머니, 아내, 어머니를 돌봐주는 여자, 치과의사 누구에게도 발붙일 수 없는 자신의 현재를 깨닫는다. 모든 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속수무책으로 서있는 미결인간”이었지만 P는 구치소 안에서 쇠창살 너머 햇살을 그리워할 때처럼 빗방울 속에서 푸르게 밝아오는 하늘을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단란했던 가족의 순간을 떠올린다. 겨울 바다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마주 앉아 안도와 감사 속에서 명탯국을 먹고 있는 장면이었다. 어머니가 끓여주는 명탯국을 먹는 그런 아침을 다시 맞고 싶은 ‘미결인간’ P에게 간절히 그리운 것은, 가족이 단란하게 명탯국 한 그릇 놓고 마주했던 그 “간절한 아침”이었다.

문자 그대로 ‘미결수’는 일종의 미결정성과 관련되는 존재자들이다. 그들은 아직 죄수가 아니고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다.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 그들의 사연이 드러나고 독자들은 그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을 이곳에 몰아넣은 원인의 대부분은 이미 이 시대의 에토스가 되어버린 돈에 있었다. 우리 사회는 급박한 발전의 요청 앞에서 합리성을 극단적으로 도구화하였고 결국 모든 것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계산적 합리성을 극대화하게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윤리의 최고 가치는 돈이기 때문에 다른 가치는 철저하게 이러한 원리에 복속하게 되었다. 김성달의 소설 『미결인간』의 미결수들은 이러한 흐름을 비판적으로 증언하는 이들로 등장한다. 독자들은 그들을 꾸짖거나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그러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사회의 비인간화를 더 깊이 마음에 새기게 된다. 김성달 소설의 지극한 미덕이자 한 시대의 에토스를 비판하는 따듯한 시선이 그 안에 출렁이고 있다.
연작소설 「미결인간」은 존재의 경계와 내면을 탐구하면서 특히 사회 주변부와 보이지 않는 공간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고립과 불안, 그리고 존엄의 문제를 소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구치소라는 공간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구조이자 장치이며, 시간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지연되는 특수한 세계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사회적 신분과 역할로부터 분리된 채, 오직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미결’은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이다.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 있는 존재 방식이다. 이때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기억은 반복되고, 후회는 증식하며, 미래는 지워진다. 남은 것은 현재라는 이름의 정지상태뿐이다.
김성달 작가는 바로 미결수들의 이 정지된 시간을 통해,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붕괴시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윤리적 판단을 유보한다. 작가는 인물을 단죄하지도, 변호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가 택하는 방식은 존재의 조건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로써 독자는 단순한 감정이입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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