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Home    |    신간도서    |    분야별베스트    |    국내도서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굿모닝, 요양병원
저자 | 강병철 (지은이)
출판사 | 삶창(삶이보이는창)
출판일 | 2025. 11.30 판매가 | 16,000 원 | 할인가 14,400 원
ISBN | 9788966551941 페이지 | 300쪽
판형 | 135*205*15 무게 | 390

   


강병철의 장편소설 『굿모닝, 요양병원』은 말년을 요양병원에 의탁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개인사적 회고와 가족사, 그리고 한국의 근대사를 함께 직조하면서 전개된다. 동시에 화자가 존엄사에 이르는 내적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이라든가 또는 그 시스템 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욕망은 좀처럼 화자의 존엄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가는 화자의 요양병원 생활의 틈새에 화자의 회고를 굵직하게 끼워 넣음으로써 화자의 존엄사를 도우며 화자 개인의 죽음마저 역사와 깊이 연관돼 있음을 일깨워준다. 과연 역사의 도저한 흐름과 개인의 삶이 불리 불가능하지만, 화자의 연배를 가진 한국의 개인들은 더더욱 한국의 근대사와 독립적일 수 없음을 작가는 짧지만 디테일한 삽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의 강압 통치로 이어지는 수레바퀴를 멈췄다고 생각하는 찰나 다시 2024년 12ㆍ3 비상계엄 사태를 소설 속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역사가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환기시킨다. 차라리 개인의 삶 자체가 역사와 깊숙이 맞물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개인의 삶은 그렇게 역사의 흐름에 수동적이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화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던 필용 씨의 건강한 자수성가에서 보듯 개인의 삶은 은밀하게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거나 또는 역사의 능동적 주체가 되기도 한다.

피댓줄 잘 감고 기계 잘 다루고 쌀가마를 정리하는 일이 그의 체질에 딱 맞더라고 했다. 근력도 장사여서 우마차 쌀가마니도 베개 들 듯 가뿐하게 들어 올렸고 돈 대신 퍼주는 쌀의 분량도 눈치껏 조금씩 깎아주면서 인심도 얻은 것이다. 그렇게 발동기 피댓줄을 돌리면서 남아 있던 빚을 쬐끔씩 털어내는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으니 전화위복의 시초이다. 손님들과 편하게 안면을 트고 이력이 붙으면서 종업원 조필용의 얼굴을 보려고 일부러 완행버스로 찾아오는 단골까지 생겨났다.
그 와중에 열아홉 수복이와 데릴사위 둥지를 틀면서 가세가 편안해진 게 확실하다. 방앗간 취업과 동시에 야무진 색시까지 얻은 겹경사 소문이 물수제비처럼 퐁퐁 퍼진 것이다.(28쪽)

주인공인 박공희 여사처럼 필용 씨는 이름 없는 필부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때로는 방황과 일탈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묵묵히 감당해낸다. 이런 필부의 생활이 어떻게 역사의 능동적 주체가 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건에 뛰어든 사람만 역사의 주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소설의 배면에 깔린 문제의식이다. 주인공 박공희 여사가 자신의 이웃들과 친척들, 자식들의 삶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것은 그들의 삶이 위대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삶을 작가가 기록한 것은 ‘역사학적 역사’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문학을 통해 역사학적 역사보다 더 큰 역사로 복권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랬을 때만이, 예를 들면 오키나와 전쟁에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당숙’의 삶이 그 큰 역사에 오롯이 등재될 수 있다. 민중의 삶은 ‘역사학적 역사’와는 무관해 보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역사를 등에 짊어진 존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여기서 당숙이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장면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잔파곶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총알이 몸을 관통할 거라는 직감이 명치를 푹 찔렀다. 하여, 여명 직전 초병들의 교대 틈새에 몰래 막사를 나온 게 ‘신의 한 수’이다. 그늘만 골라 찾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곧바로 해변가 절벽으로 치달렸으니, 초병의 눈에 걸리는 즉시 사살된다. 사생결단 각오로 나뭇가지를 잡고 서쪽 벼랑을 뛰어내리다가.
‘으으흐흡.’
삭정이가 부러지면서 오른손가락 두 개가 바위에 갈리는데도 아픔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중지와 검지 두 개가 쌍둥 잘려나가면서도 오히려 신음소리를 죽이느라 입술조차 떼지 못했다. 윗도리로 손을 싸맨 채 바다가 보이는 절벽 동굴을 찾아 엉금엉금 숨는 찰나 비행기 폭격이 ‘쾅, 쾅’ 터졌다. 방금 탈출했던 막사가 불길에 활활 휩싸인 것이다. 그 절체절명을 벗어난 후에도 동굴 바깥으로는 절대로 나오지 않으면서.(78~79쪽)


 

고객센터(도서발송처) : 02-835-6872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0 메트로타워 16층 홈앤서비스 대표이사 최봉길
COPYRIGHT ⓒ HOME&SERVICE CO., LT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