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Home    |    신간도서    |    분야별베스트    |    국내도서


사회과학 > 지리학/지정학 >
안용복과 죽도일건(竹島一件)
저자 | 김호동 저
출판사 | 경인문화사
출판일 | 2019. 04.30 판매가 | 48,000 원 | 할인가 43,200 원
ISBN | 9788949948034 페이지 | 778쪽
판형 | 153*224*40mm 무게 |

   


우리나라에서 안용복을 숙종 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 막부정부가 자인하도록 활약한 ‘민간 외교가’라고 하거나, 흔히들 ‘장군’으로 부른다. 1954년 부산의 애국단체인 大東文敎會에서 ‘독전왕 안용복 장군’으로 추존식을 거행한 것이 안용복을 장군으로 칭하게 된 계기이다. 부산 수영사적공원에 안용복을 모시는 사당인 ‘守彊祠’가 있고, 그 앞에 ‘安龍福 將軍 像’이 있다. 울릉도 독도박물관 앞에 ‘안용복장군충혼비’가 있다. 그 때문에 흔히들 ‘안용복’을 ‘장군’으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일본의 자료인 『竹島考』에 실려 있는 안용복 호패에는 ‘私奴’로 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안용복’을 독도를 지키는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반면, 일본의 경우 연구자들도 ‘안용복’을 ‘허구와 과장으로 꽉 차 있다.’라고 한다. 지금의 경우, 한일 양국에서 ‘안용복’에 치중하여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들 안용복을 독도를 지킨 인물로 치켜세우면서, ‘장군’, 혹은 ‘민간 외교가’로 부르며 영웅시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있다. 어느 개인의 능력이나 심리상태가 역사적 사실의 중요 원인으로 부각되면 역사가 우연의 소산물로 이해되거나 영웅주의 역사관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안용복이 살았던 시대는 17세기 소빙기로 인한 대재난의 절정시기이다. 대재난에 빠진 조선의 동남해연안민들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울릉도?독도에 많이 들어갔다. 그 일원 가운데 ‘안용복’과 ‘박어둔’이 일본 오야가의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조선 조정-동래부와 일본 에도 막부-쓰시마 번에서 ‘鬱陵島爭界(竹島一件)’가 발생하였다. ‘안용복 납치사건’으로 인해 조선 조정은 우리나라 동남해연안민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드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적극적으로 일본 에도 막부-쓰시마 번과의 외교 교섭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지킬 수 있었다. 민초들의 적극적 삶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조정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안용복’을 강조하기 보다는 ‘鬱陵島爭界(竹島一件)’를 강조해야 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외교전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을 부각하여야 한다. 이 저술에는 안용복 납치사건으로 인해 국가와 국가 사이에 ‘鬱陵島爭界’가 일어나 외교전을 통해 동해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한국 측 사료에 근거하여 ‘안용복 상’을 그려낸다 하더라도 일본을 설득시킬 수 없다. 이제 그들이 금과옥조로 신빙하는 일본 사료들을 통해 새로운 ‘안용복 상’을 그려낼 필요성이 있다. 일본 사료들과 한국 사료들을 국제적 시각, 객관적으로 비교할 필요가 있다.

『竹島考』 上, ?或問?의 경우, “일본의 지명조차도 조선국에서 가까운 곳은 그처럼 호칭하였다. 그러니 竹島에 한해서 자기의 관할지를 일본식으로 읽을 이유가 없다.”라고 하여, ‘다케시마’?‘마쓰시마’의 경우 한자로 ‘竹島’, 혹은 ‘竹嶋’ 및 ‘松島’ 혹은 ‘松嶋’를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일본의 홍보를 싫어하므로 ‘竹島’, 혹은 ‘竹嶋’ 및 ‘松島’, ‘松嶋’라고 쓴다.


 

고객센터(도서발송처) : 02-835-6872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0 메트로타워 16층 홈앤서비스 대표이사 최봉길
COPYRIGHT ⓒ HOME&SERVICE CO., LTD. ALL RIGHTS RESERVED